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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아무 말이나

0. 블로그를 시작하며

by podami 2019. 3. 16.

1. 


블로그를 처음 시작 한 것은 십여년 전.   그때 나는 신림동의 작은 원룸에서 공무원 준비를 하는 언니와 살고 있었다. 


 야자를 마치고 와서 12시에 자서 4시에 일어나 매일 모의고사를 푸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새벽 4시. 동네 무당이 징소리와 함께 스산하고도 요란한 아침을 맞이했다. 주말에는 옆 방 고시생이 여자친구를 데려와서 하루에도 몇번씩 교성을 질러대며, 억눌린 젊음을 터뜨리기 바빴다.


참 열악한 환경이었다. 


하지만 집에 돌아가면, 방이 없었고 인구밀도가 높았기에 내가 우겨서 선택한 고3생활이었다. 당시에 나는 스트레스를 풀 통로가 없었고, 그때 시작 한 것이 네이버 블로그이다. 고3의 여름이 절정으로 치닫았을 때 시작한 블로그는 20대 초중반까지 열심히 글을 남겼다. 그곳은 소중한 공간이자, 내가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그곳에 글을 쓸 수 없다. 10년 넘게 그 블로그를 해오면서 그곳은 나의 공간인듯, 나의 공간이 아닌 곳이 되어버렸다. 마치 일터와 같은 공간이 되었다. 공식적인 '내'가 존재하는 곳. 나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어떠한 SNS를 하지 않는 대신에 공식블로그마냥 그 블로그를 운영해왔다. 


그래서 나를 아주 가깝게 아는 사람들, 특히 전 남친 등은 그 블로그를 알았다. 그리고 때론 그 블로그와 연동된 이메일로 가입된 여러 사이트와, 사람들과 주고 받은 메일은 자연스럽게 나의 공간을 노출하게 되었고, 나는 자연스럽게 내 삶에 대해서 말할 수 없게 되었다.


2.


10여년이 넘게 흘러서, 나는 다시 그 고3 원룸의 상황과 같은 환경에 놓여져 있다. 참으로 우습지 않은가 싶다. 내가 열아홉때에는 이런 15년 뒤의 모습을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십여 년  뒤의 모습이 고작 지금이라면, 나는 그때 잠을 3시간이라도 더 자고, 스산한 무당의 징소리와 함께 피곤한 몸을 억지로 일으켜세우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 이것이 모두 '과정' 이라며 아무리 좋은 말로 위로한다해도, 결과론적으로는 그렇다. 


달라진 것은 나는 돌아 돌아, 다시 학생이 되었고 신림동이 아닌 유럽의 한 나라의 작은 방에서 글을 쓴다는 것이다. 그리고 고립되어 있는 것도 맞다. 고3때 느꼈던 처절한 고독감 - 즉, 아무도 해줄 수 없는, 결국은 혼자서 풀어나가야하는 입시의 절벽처럼, 나도 그러한 상황에 놓여져 있다. 


그래서 나는 정말로 아무 이야기나 쓸 공간이 필요했다. 


나의 옛 친구들이 아파트를 넓혀가고,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고, 직장에서 승진을 하는 사이에 내가 이렇게  시시한 일상을 산다는 것을 노출해도 부끄럽지 않은- 그런 공간. 


그래서 블로그의 제목은 Whatever I say 이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나는 그냥 쓸 것이다. 이곳은 앞으로 내가 쓸 모든 글의 1차 저장소가 될 것이다. 여기서 때론 처절한 기록을 남길 것이고, 어쩔 땐 기쁜 일을 쓸수도 있고, 혐오에대해서 쓰다가  사랑을 말할 수도 있겠다. 그냥 아무 이야기나 쓰겠다. 그럴려고 시작한 것이 블로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