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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아무 말이나

3. 공간

by podami 2019. 4. 15.

1.

방탄소년단의 신곡 알람에 맞춰 깨어났다. 새벽 5시. 먹고 살기 위해서 일어나지만 글쓰기도 좋은 시간이다. 베를린에서 온 친구 s가 요가매트 위에서 쌔근쌔근 자고 있다. 새벽 1시간 넘도록 재잘거리다가 '잘자요' 란 인사를 한지 얼마 되지 않아 귀엽게 코를 골면서 잔다. 

하루를 열심히 산 사람의 꿀잠 같은거랄까?

나는 오랜시간 수면장애를 앓아왔고, 수면클리닉도 다녀봤고, 약도 복용해봤다. (지금은 asmr의 도움으로 꽤 나아졌다. )수면장애가 생긴것은 초등학교 5학년 즈음 35평 아파트에 할머니가 오면서다. 35평에 아파트, 방 3개, 화장실 2개, 거실+부엌의 공간에 살 수 있는 최대 인원 수는 6명이었다. 

딸 두명씩 방을 쓰고, 엄마 아버지가 안방을 쓸 때까지는 우리는 살만했다. 그러나 큰언니의 수능 일주일을 앞두고 갑자기 들이닥친 할머니는 어린 날의 내 우주를 망가뜨렸다. 

할머니는 큰방(안방)을, 그리고 엄마 아버지는 중간방을, 나와 언니들 세명은 가장 작은 방에서 살게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책상 네개를 작은 방에 우격다짐하듯 몰아넣었고, 넷은 마루에서 잤다. 끔찍했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독립'을 생각했다. 마치 이곳은 고아원이나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했다. 공간의 통제성을 잃은 나에겐 그때부터 집은 더 이상 '집'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물리적 공간의 독립은 좀 더 빨리 찾아와서 열아홉에 가능했고, 수능이 끝나고 대학 합격이 결정되자 마자, 나는 35만원짜리 과외 두개 즉 월 70만원의 소득을 확보 한 후 집에서 나갔다. 

경제적, 물리적 독립을 한 셈이다. 35만원으로는 신촌 지하 방 하숙비로 냈고, 나머지 35만원으로는 생활비를 썼는데 그 와중에 25만원만 쓰고 10만원은 이월하거나 저금을 했다. 살은 자연히 빠졌다. 그때는 힘든지도 몰랐던 것 같다. 지하 방에서 시작해서 지상으로 올라오고, 여러명과 같이 살기도하다가, 독립된 공간을 얻고, 나중엔 괜찮은 오피스텔에 살게 되었을 때, 비로소 나의 삶이 정체되어있지를 않는다는걸 '공간'의 변화로 확인했다. 

 가난한 연인이 단칸방에서 시작해서 집을 늘려가는 그 기쁨 비슷한 것이려나. 뿌듯했다.  공간은 나에게 '먹고 자는 곳'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지치지 않고 부지런하게 살아내는 원동력이 되었다. 

 

2.

하지만 독일에 와서 나는 다시 제로베이스로 시작하게 되었다.

첫번째 주거 공간은 끔찍했다. 그 어떤 공간보다도 지옥같았다고 단연코 말할 수 있다. 정신적으로 문제있는 히스테리컬하고 예민한 집주인과 한 공간을 같이 쓰고, 월세를 내고도 방에 들어가지 못해 끊어질듯한 생리통의 고통에도 그 추운 겨울에 도서관에 밤 11시까지 있어야했다. 난 아직도 앙심을 품고 있다. 글쎄, 그 끔찍했던 몇개월을 평생 내 인생에서 잊을 수 있을까? 나는 그 집주인을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것도 소름끼쳐서 시내를 가지 않는다. '않는다' 보단 '못한다'가 정확한 표현이겠다. 

 

두번째 공간인 지금 내가 사는 곳은, 같이 쉐어 하는 공간이 더럽다. 그래서 내 방에서 대부분을 해결한다. 내가 처음부터 이곳에 살았다면 불만이 많았겠지만, 정말 최악의 공간에서 살아보니 지금 사는 곳도 감사 할 지경이다. 그 누구도 나에게 뭐라 하는 사람이 없고 독립적인 생활공간이 확보되기 때문이다. 친구를 데려왔다고 30유로를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쌔근쌔근 자고 있는 친구의 귀여운 코골이 소리를 듣고 있자니, 문득 이곳에서도 나는 공간의 변화를 통해 조금은 '나아진 삶'을 한국에서처럼 경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좁은 공간이긴 하지만 친구를 재울 수도 있고, 혼자 밤에 술안주를 만들어먹어도 마음 편하게 먹을 수 있다. 

새벽에 새소리가 들리고, 명징한 상태로 글을 쓸 수도, 일을 할 수도 있다. 이 공간도 나에게는 나름 소중하다. 한국에서는 이렇게 고요하게 있을 수 없다. 떠나고 싶지 않다. 그러니까 남은 시간 집중해서 보내자. 이곳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무척 아쉬워졌다. 목표를 이루고말고를 떠나서, 이 공간을 떠나고 싶지 않아졌다.

내가 만약 복잡한 서울로 돌아가게 되면, 완벽하게 혼자이면서, 자유로운 공간. 사람들과 떨어져서 독자적인 사유를 할 수 있는 공간을 갖긴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