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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아무 말이나

2. 함부르크, 밥벌이의 굴레

by podami 2019. 4. 3.

3/29일 오전 11시 기차에 몸을 실었다. 하노버에 가기 위해서였다.

기차타고 가면서 전자책 리더기를 꺼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29일-30일을 오가면서 500페이지가 넘는 책을 다 읽었다. 

하노버에 들러서 일을 보고, 함부르크에 갔다.

오랜만에 먹는 통닭, 짬뽕, 불고기.. 먹고 카페에도 잠시 갔지만 시간이 없어서 테이크아웃했다.

좀 들뜬 나머지 신났는데, 그게 거슬렸던 한 동생과 지하철에서 싸우게 되었다. 정말 기분이 좋지 않았다.

다시 함부르크에 오고 싶지 않아졌다. 물론 나의 사과로 마무리하긴 했다. 나는 갈등이 피곤하다. 그런데 마음을 쓸 에너지가 없다. 오는길에 와인과 메론 등을 샀다. 마음 통하는 J언니와 늦게까지 수다를 떨었다. 

3월 30일 토요일 

금요일의 여파때문인지, 일요일까지 있으려던 계획을 변경하고 그 날 당일에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선택지가 두가지가 있었다. 2시 30 차는 플릭스 버스 12유로였고, 니더작센티켓은 24유로였다. (시간 자유) 

두시반은 빡빡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둘다 아침형 인간이라 일찍 일어났다. 새벽 6시쯤 깼나. (사실상 거의 못잤다) 

일어나서 같이 반호프 역의 커피숍에 갔다. 도시의 느낌이 났다.

 

대충 이렇게 아침을 떼우고 함부르크의 호수에서 광합성을 했다.

아저씨 미안해요. 고의는 아니었는데 얼굴이 나왔네. 

하늘이 맑고 쾌청했다. 햇빛에 굶주린(?) 함부르크 시민들이 모두 시내에 나온듯 앉을 자리 한 곳 없었다. 맥도널드도, 스타벅스도, 일반 커피숍도, 벤치도 모두 사람으로 가득찼다. 문득 조금 피로했다. 집에 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책이나 읽고 자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오후 3시차를 타고 돌아왔다. 

오는 길에 금요일부터 읽기 시작한 책을 다 읽었다. 나는 글을 빨리 읽는다. 이 여행(?)에서 남은 것은 글쎄.. 기차를 타고 가면서 읽었던 책 정도. 

이틀간 100유로를 썼다. 차비 + 밥값 등등.. 

이런 일상의 사치도 이번 상반기의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년엔 더욱 없을테지. 이제 J언니가 없으므로 갈 수 없다. 내가 재작년에 독일에 와서 한창 힘들었을 때, 절정이었던 크리스마스 그때. 남의 집에서 눈치밥 먹으면서 정말 하루하루가 지옥같았을 때 언니네 집에 크리스마스에 갈 생각을 하면서 12월을 그냥 참아냈던 것 같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 언니네 집에 있다가 그 정말 죽기보다 돌아가기 싫었던 집으로 돌아갈 때, 버스도 오지 않고 눈을 듬뿍 맞고 젖은채로 갔었을 때 말이다. 가끔은 그냥, 그때 한국에 돌아갔어야 했나. 생각이 들기도 한다. 

2.

지금은 새벽 5시. 돈을 벌기 위해서 또 잠을 별로 자지 못하고 일어났다. 내 수면의 질은 하락하고 있다. 일을 하면서 동시에 블로그를 하고 있으니 꿀일런가. 여튼 돈은 벌어야한다. 계속 벌어왔고 스스로 살아왔으니 벌지 않는 것이 더 스트레스일 것이다. 하지만 피곤하다. 감기는 제대로 낫지 않았는데 5시에 일어나지 못할까봐 계속 몇번씩 깼다. 

학동역으로 합사를 나가기 시작해서 지옥철을 타야하는 애인과 톡을 나누었다. 어른의 삶이 버겁고 지긋지긋하다. 하루라도 움직이지 않으면 이 한 몸뚱아리를 살아 낼 수 없다. 저절로 살아지는 때가 10대가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그냥 문득 밥벌이, 입에 풀칠하기 위해서 어떤 행위를 매일매일 해야하는 굴레 속에서 우리가 언제 나올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콩콩이를 타고 싶으면 아이를 포기해야지.. 

 

나는 귀여운 이모티콘을 보내면서 투정부리는 남자친구에게 

애 갖는건 고려해봐야한다 라고 말했다. 콩콩이를 타고 싶으면서 애를 어떻게 갖나. 매일매일 회사 때려칠 생각 밖에 없다. 

아이를 갖는 순간 무거운 책임감에 짓누릴 것 같다. 이렇게 내 몸뚱아리 하나 자급자족 먹고 사는것도 쉽지가 않은데 자식까지 부양하고, 이미 계신 부모님에 대한 부양 부담까지 생각하니 아이는 언감생심이란 생각이 들었다.

유발 하라리는 행복과 불행이 생화학적 시스템에 따라 결정된다고 했다. 나의 생화학적 시스템에 의하면,  번식 욕구마저 알아서 소멸 할 정도로 위기를 감지했나보다. 암컷은 불안한 환경에서는 짝짓기를 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돈 버는걸 포기하고 아이를 낳고 키운다. 전업주부의 길은 유전자속에 프로그래밍된 그대로의 삶에 꽤 충실한 것일지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타의적 은퇴하기 전까지 쉬지않고 돈을 벌고,  대신 아이를 포기로 했다. 왜냐하면 나에겐 돈을 벌지 않을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지질 않았다. 에전에도 그랬고, 앞으로 그럴 것이다. 외벌이는 아무나하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벌지 않고도 삶이 굴러갈 수 있다는건,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팔자려니 한다. 그리고 가끔씩 이런 사실을 인지할 때마다  마음이 지친다. 김훈 작가가 말한 밥벌이의 지겨움, 하루를 움직여야 삯이 나오고 그걸 먹어야 또 삶이 굴러가는 이 지난한 의무를 남은 생 내내 해야한다. 그뿐인가. 몸뚱아리가 늙고 머리가 굳어서 돈을 벌지 못하게 되면 또 그때 쓸 것까지 비축해야한다. 이 고행은 내 세대에서 끝내면 족하다.  

 

이 영화의 댓글이 좀 위안이 되었다. 그래, 나만 지긋지긋한건 아닐거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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