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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아무 말이나

가랑비처럼 젖어서

by podami 2020. 9. 29.

1. 네이버 블로그에 매일 기록하려고 했으나, 포기했다. 이미 예전(?)지인들에게 노출된 블로그라서 자유롭지가 않다. 나는 요즘 매일매일이 버겁다. 그냥 인생이 그러려니 해도 참 지친다. 언제까지나 돈의 문제가 나를 늘 이렇게도 고달프게 할 것이라고 생각하니 가끔은 무력함을 넘어서 아득한 느낌이 든다. 10대때도 돈 때문에 하고 싶은 걸 못했고, 20대때는 늘 허덕였고, 30대때에는 대출의 늪에, 그리고 40대에도 50대에도.. 난 언제쯤 좀 여유롭고 풍요로운 느낌을 가져볼 수 있을까?

 

가끔은 아니 사실은 자주 독일에 유학 간 것을 많이 후회한다. 현실의 앞에서 내가 가졌던 꿈이라는게 참 사치스러웠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실리적인 선택'을 했어야 했을까. 모르겠다. 4-5년전으로 돌아가도 나는 똑같은 선택을 했을까? 나는 그곳에서 무엇을 얻었을까? 외국어? 사람? 극빈층 외국인? 열악한 기숙사에서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잃어버린 하루하루들? 지지부진하게 시험을 준비하면서 괴롭고 마음 졸이던 순간들? 

 

하지만 분명 행복한 순간들도 있었다. 그 한적한 동네, 다시는 오지 않을 듯한 여유, 맑은 공기, 특히 나는 장을 볼 때 행복했다. 그리고 산책할 때. 참 웃기지 않은가. 유학생활에서 가장 행복했던 것이 페니를 갈 때였다니. 좀 서글프긴 한데, 해가 좀 지기 전에 노을이 질 때쯤에 페니나 테굿에 가는게 참 행복했다. 

 

2. 사실 욕심을 버리면 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갭투자를 포기하면 될 일이고, 서울 아파트를 포기하면 될 것이고, 이 현금을 가지고 적당히 전세대출을 받으면 꽤 좋은 아파트에서 살 수 있다. 

 

하지만, 결국 그것은 남의 집을 '빌리는 것' 이고, 나는 '빌리는 인생' 에 이제 지쳤다. 더 이상 빌려서 살고 싶지 않다. 할머니가 이 집에 오고부터 시작된 나의 주거 불안, 12살때부터 30중반에 이르기까지의 이 제대로 된 공간없이 전전하던 삶을 이제는 끝내고 싶다. 

 

초저금리 시대가 되고, 남발하는 부동산 정책때문에  부동산은 치솟았지만, 화폐 가치는 곤두박칠 쳤다. 이런 시대에는 현금을 자산화 하지 못하면 계속 주거 불안속에 살게 된다. 이미 버스는 지나갔다. 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짚신 신고 포기하고 계속 걸을 수는 없지 않은가.

 

내가 독일 가던 시점에 집을 사거나 결혼을 한 주변 사람들과 너무나도 격차가 벌어졌다.  누군가는 집을 사고, 그 오른 집을 팔고 주담대를 받아 더 좋은 주거 환경으로 옮겨갈 때, 나는 계속월세를 전전하며 살아갈지도 모른다. 그 불안감이 나를 잠식해가고 있다. 

 

3.

 

근로소득이 의미도 없어진 이 시대에, 무얼하러 공부했나 회의가 든다. 내 주제에, 감히, 무슨 학계에 발을 들이겠다고. 그래 그분말대로 개천의 가붕어면 가붕어답게 살 것을. 일을 하다가 이런 자조감이 계속 든다. 너무 허망한 꿈을 꿨구나. 연구자가 뭔데? 문과공부 귀족이나 하는게 공부인데 이 길을 참 무모하게도 나섰구나. 유학을 가는대신에 전문대학원에 가서 전문직이라도 땄으면 입에 풀칠이라도 하고 살까? 근데 그 또 무한경쟁의 늪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했다. 

 

한국은 참 살벌한 나라다. 죽어라 일해도 집 한채 살 수 없고, 경쟁도 과열되어 있고, 마음의 여유가 없다. 지하철 역무원을 뽑는데 수백대 일이다. 학교 커뮤니티에는 서교공 이야기가 가득하다. 살아가면 살아갈 수록, 시작한 기반이 계속 더 큰 격차를 벌어지게 함을 느낀다. 그런데, 사실 그 격차라는거 충분히 노력으로 줄일 수 있있고, 그런 시기도 있었는데 

 

내가, 놓쳤다. 

 

헛꿈을 꾸느라. 

 

독일에 있을 땐 잠시 덮어두고 살았다. 그땐 여유자적 산책도 하고 맥주도 마시고, 마음이 불안한듯 하지만 그건 학교에 갈 수 있나 이런거나 걱정했다. 차라리 학교에 떨어졌으면 돌아와서 빨리 정신을 차리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었을까? 압살될듯한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나는 행복했을까?

 

답은 모르겠다.  현실의 무게에 짓눌리다보니, 모든게 신기루처럼 느껴진다. 

 

한 친구가 이야기했다. 쾌적한 상태에서 비를 맞으면 그게 크게 느껴지는데, 이미 비를 맞고 있으면 비가 더 내려도 안힘들다고.

 

아니, 개뿔. 비는 계속 맞고 있었는데 가랑비처럼 젖어드는게 아니라 그냥 비는 축축하고 춥다.

 

참 지친다.